세상은 불공평하다. 아무리 모든 인간은 공평하다고 주장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공평한 것투성이다. 요즘 자조적으로 내뱉는 금수저흙수저 논란처럼 태어날 때부터 환경이 다르고 개개인마다 외모나 건강을 포함한 외형도 다르다. 살아가는 모습에 따라 차이가 더 벌어진다.
이런 불합리함을 말할 때마다 언급되는 것 중에 하나가 ‘누구에게나 24시간은 공평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진 자’라고 해서 더 가질 수도 없고 ‘없는 자’라고 해서 빼앗길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 불평등을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공평한 시간 앞에서 더 노력하라고.
그렇다. 맞다. 24시간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것이니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것은 24시간이라는 물리적 형태를 말할 뿐이다. 이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질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력에 따라서 시간의 활용도가 엄청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교통비가 없는 사람들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걷어야 한다면, 어떤 이는 개인용 비행기를 타서 시간을 단축시키거나 자가용으로 움직일 수 있다. 누군가는 며칠 걸려 청소할 시간을, 누군가는 비용을 지불하고 그만큼의 시간만큼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즉 똑같은 시간이라도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사용하는 시간의 질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경제적 차이뿐 아니라 나 같은 경우처럼 장애로 인한 차이도 있다. 한 동료는 너무 더운 날에는 10분 만에 샤워를 빨리하면 시원하다고 한다. 나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일단 샤워하기 위해서 옷을 벗는데도 10분이 걸린다. 머리라도 감고 샤워하기까지 기본이 1시간씩 걸린다.
남들은 계단으로 바로 내려가면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뱅뱅 돌아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다면 30분 아니 1시간보다 더 걸릴 수 있다. 청소 역시 후다닥 해치우기보다는 한나절이 걸린다. 즉 남들이 걸리는 시간보다 장애를 가지면 몇 배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하루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지만 곧 몇 개를 하지도 못하고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참 많은 일들을 해내는 데 나는 왜 이렇게 보낼까 하고. 내가 너무 게으른가? 너무 비효율적으로 하는 걸까?
다 맞는 말이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을 자거나 쉬는 시간이 많기도 하다. 몸이 통증이 많은 날은 더 피곤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장애로 인해 남들과 다르게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 또한 이유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나처럼 장애를 가졌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면, 시간에 관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한정된 24시간을 남들과 비교하고 살 수 없다, 질적인 시간은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많은 곁가지 일들을 쳐낸 후 진짜 해야 할 일에 더 몰두하는 것, 그것만이 조금이라도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